토이
歌 手:토이(Toy) 国 籍:韩国 歌手组合:유희열(柳熙烈)(보컬(bocal), 키보드(keyboard), 작곡(作曲)) 特别的:유희열(柳熙烈)自己不直接唱歌,而是在他们组合里作客串歌手 1994年推出第一张专辑<내 마음속에(我的心里)> 결성 (Formed) 1992년 / 한국 (Rep. of Korea) 구성원 (Group Members) 유희열 - 보컬 '토이' 를 거쳐간 아티스트 보컬 윤정오 유희열은 사실상 프로젝트명이라고 할 수 있는 토이(Toy)의 핵심 멤버이자 리더로 섬세하고 감각적인 작/편곡 실력을 내세운 작곡가이자 가수, 프로듀서, 연주자이다. 사실 토이는 2집인 「Toy」(1996) 이후로는 공식 멤버로 오직 유희열 한 사람만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으로 평범한 의미의 그룹이나 밴드로는 볼 수가 없는데,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 같은 이유이다. 토이의 데뷔는 1994년에 이루어졌는데 유희열 혼자가 아닌 윤정오라는 엔지니어와 함께였다. 매우 독특한 이 같은 구성은 사실은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Alan Parsons Project)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이 라인업은 오직 단 한 장의 앨범으로 그친다. 유희열은 공식적으로 오직 토이라는 프로젝트로만 앨범을 내왔기 때문에 그 둘을 분리하여 논의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먼저 그의 정규작인 토이의 앨범들을 살펴보면 그 색과 성향은 꾸준히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풋풋하고 아마추어적인 냄새가 나며 이후의 앨범에 비한다면 오히려 데뷔 이전 '조동익 사단' 등과 함께 했던 연주자 시절의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 1집 「내 마음속에」(1994)부터 이국적인 향취가 가미된 세련미가 돋보이는 5집 「Fermata」(2001)까지 그의 음악을 주도적으로 지배하는 감성은 '따뜻함'과 '소박함'이다. 유희열은 자신이 영향을 받은 국내의 뮤지션으로 조동익, 최성원, 윤상, 조규찬 등을 꼽기도 하는데, 이들에게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 일관된 스타일을 발견할 수 있다. 유희열에게는 대중음악인으로서 결정적인 변화의 계기를 맞게 되는 시점이 있었는데 바로 1집과 2집을 사이에 둔 시기였다. 그는 우연히 정석원의 연락을 받고 이장우의 솔로 데뷔작을 프로듀스하게 되었고 이후 공일오비(015B)의 음악적 성향, 멤버구성, 활동방향 등에 대한 측면에 영향을 받아 2집 작업에 임하게 된다. 2집의 상당 부분에서 공일오비의 질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객원가수 도입, 연주곡 삽입, 영미 팝 음악에의 영향, 감각적인 노랫말, TV를 자제하는 이미지 형성 등은 매우 닮아 있다. 이러한 특성은 이후 3집에서 5집까지도 토이라는 프로젝트의 주된 특성이 되기도 한다. 3집 이후로 그는 공일오비만큼이나 왕성한 활동으로 많은 고정 팬을 확보, 가요계의 핵심적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2집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을 잇는 후속작 '바램'이 히트했고, 4집 「A Night In Seoul」(1999)에서는 '여전히 아름다운지', 5집에서는 '좋은 사람'이 연속적으로 히트했다. 그 와중에 그는 프로듀서나 연주자의 모습으로도 뚜렷한 자취를 남기는데, 윤종신의 「우」(1996)를 프로듀싱, 좋은 평가를 얻었고, 이문세의 「화무」(1996)에서는 사실상 이문세의 7년만의 공중파 넘버원곡인 '조조할인'을 작사, 작곡, 편곡하기도 했다. 이승환의 음악 경력에서 가장 유력한 파트너, 연주자, 프로듀서로 유희열을 빼놓을 사람은 없을 것인데 6집, 7집 등 90년대 중반 이후 이승환의 많은 작품들은 바로 유희열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외에도 김장훈, 박정현, 이소라, 공일오비의 앨범 속에서 그의 이름을 연주자, 프로듀서, 작곡자로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각종 잡지나 인터넷, PC통신 동호회 등의 음악 애호가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라디오 DJ로서도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